많은 이견이 있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디자이너를 '노동자 계급'으로 본다. 분명 '노동자 계급'에 해당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디자이너는 자본가에 의해 임금을 받고 일정 수준이상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에 의한 착취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디자이너는 '노동자 계급'이 된다.
디자인 그 자체는 원자재가 불필요한 생산물이다. 순수하게 디자이너의 능력에 의해서 그 생산물이 좌우되며 자본가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안다. 이런 사실은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이너에게 한계 이상의 노동력을 요구하게 된다. 디자이너에게 노동 3권은 무시되고 일주일에도 몇일씩 밤을 새워야 하는 불합리한 노동은 계속 된다. 하지만 한달에 손에 들어오는 돈은 차비, 세금, 밥값을 제외하고 약 100만원 정도이다. 일부 메이저 회사, 교수, 좋은 학력 그리고 그 이외의 좋은 조건들을 가진 '엘리트 디자이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노동과 착취는 계속된다.
필자는 3년의 회사 경력을 갖고 있다. 이 3년의 대부분은 전문대학생의 스펙을 갖고 있었으며, 이 기간동안 단 한번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 보질 못했다. 당시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네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 혹은 "니가 노력을 해야지"라며 말을 건넨다. 진짜 필자가 능력(?)이 없거나 노력을 안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 단지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사회적 핸디캡은 학벌이었다. 자본가와 디자인 회사대표, 그리고 일부 엘리트 디자이너의 차별과 편견,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전문대에서 잘나가는 4년제 대학으로 스펙이 바뀌면 알 수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디자이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차별과 편견이 그들에 의해서 더 많이 이루어 진사는 사실만으로도 힘없는 대다수 디자이너의 노동 상황은 씁쓸하다.
이런 대한민국의 척박한 자본주의의 노동환경 속에서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은 희망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싸울 힘도, 학별도, 인맥도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분명 디자이너의 노동 3권을 위한 단체가 존재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단 한번의 파업도, 단 한번의 환경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디자이너에게 진정한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가? 왜 모두가 투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위한 움직임을 시작도 못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상식선에서 몇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는 소규모이다.
2.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는 영세하다.
3. 올드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디자이너의 밤샘을 당연시 여긴다.
4. 국내 시장은 작다. "대부분의" 힘 없는 디자이너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공급에 차질을 빚기는 힘들다. 디자인의 공급은 소수의 엘리트 디자이너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들은 충분한 노동조건을 공급받는다.
위에 열거한 이유에 대해서 분명 반론과 편견이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힘없는 디자이너들은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88만원 세대가 존재 한다면 그것은 디자이너다. 타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학비, 90%의 비정규직 취업률, 산업혁명 직후의 자본주의에나 존재했던 낮은 임금의 과도한 노동 착취, 낮은 결혼율과 망가져가는 건강.... 지금도 컴퓨터 앞에 처박혀 24시간 일하며 게임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디자이너들, 충무로에서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야 하는 디자이너들, 과도한 경쟁으로 지금도 디자인 단가를 낮춰야 하는 대표 혹은 디자이너들, 그리고 그 이외에 많은 디자인 분야에서 소외된 디자이너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판단하건데 디자이너들이 제 3부분(자발적인 단체)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정부의 개입이다. 디자이너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단체의 설립과 활동,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 그 어디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없다 (이 정부에 대해 대체 뭘 바라랴?).
진정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영국의 방직공장 어린이들 처럼 엄청난 죽 노동과 저임금으로 사회에서 개처럼 일만하다 버려 지는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워킹홀리커(?)들을 위해 형성된 경혼정보회사에서 디자이너는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들에게 남은건 씁쓸한 미소 뿐이다.
"명사가 된 디자이너의 뒤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24시간 사회'를 살고 있는 디자인 '잡역부들'—이를테면 컴퓨터 게임의 그래픽을 하청받아 며칠 동안 낮밤을 잊어가고 고스톱 화투패를 그려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사이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디자인 멜랑콜리아 (서동진 지음) 14쪽, 8번째 줄 –
+ 엘리트 디자이너와 힘 없는 디자이너의 구분은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이에 대한 논쟁 또한 환영합니다.
+ 디자이너의 노동 3권 확보에 대한 의견 및 논의 적극 환영합니다.
디자인 그 자체는 원자재가 불필요한 생산물이다. 순수하게 디자이너의 능력에 의해서 그 생산물이 좌우되며 자본가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안다. 이런 사실은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이너에게 한계 이상의 노동력을 요구하게 된다. 디자이너에게 노동 3권은 무시되고 일주일에도 몇일씩 밤을 새워야 하는 불합리한 노동은 계속 된다. 하지만 한달에 손에 들어오는 돈은 차비, 세금, 밥값을 제외하고 약 100만원 정도이다. 일부 메이저 회사, 교수, 좋은 학력 그리고 그 이외의 좋은 조건들을 가진 '엘리트 디자이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노동과 착취는 계속된다.
필자는 3년의 회사 경력을 갖고 있다. 이 3년의 대부분은 전문대학생의 스펙을 갖고 있었으며, 이 기간동안 단 한번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 보질 못했다. 당시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네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 혹은 "니가 노력을 해야지"라며 말을 건넨다. 진짜 필자가 능력(?)이 없거나 노력을 안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 단지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사회적 핸디캡은 학벌이었다. 자본가와 디자인 회사대표, 그리고 일부 엘리트 디자이너의 차별과 편견,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전문대에서 잘나가는 4년제 대학으로 스펙이 바뀌면 알 수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디자이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차별과 편견이 그들에 의해서 더 많이 이루어 진사는 사실만으로도 힘없는 대다수 디자이너의 노동 상황은 씁쓸하다.
이런 대한민국의 척박한 자본주의의 노동환경 속에서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은 희망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싸울 힘도, 학별도, 인맥도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분명 디자이너의 노동 3권을 위한 단체가 존재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단 한번의 파업도, 단 한번의 환경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디자이너에게 진정한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가? 왜 모두가 투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위한 움직임을 시작도 못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상식선에서 몇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는 소규모이다.
2.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는 영세하다.
3. 올드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디자이너의 밤샘을 당연시 여긴다.
4. 국내 시장은 작다. "대부분의" 힘 없는 디자이너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공급에 차질을 빚기는 힘들다. 디자인의 공급은 소수의 엘리트 디자이너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들은 충분한 노동조건을 공급받는다.
위에 열거한 이유에 대해서 분명 반론과 편견이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힘없는 디자이너들은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88만원 세대가 존재 한다면 그것은 디자이너다. 타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학비, 90%의 비정규직 취업률, 산업혁명 직후의 자본주의에나 존재했던 낮은 임금의 과도한 노동 착취, 낮은 결혼율과 망가져가는 건강.... 지금도 컴퓨터 앞에 처박혀 24시간 일하며 게임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디자이너들, 충무로에서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야 하는 디자이너들, 과도한 경쟁으로 지금도 디자인 단가를 낮춰야 하는 대표 혹은 디자이너들, 그리고 그 이외에 많은 디자인 분야에서 소외된 디자이너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판단하건데 디자이너들이 제 3부분(자발적인 단체)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정부의 개입이다. 디자이너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단체의 설립과 활동,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 그 어디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없다 (이 정부에 대해 대체 뭘 바라랴?).
진정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영국의 방직공장 어린이들 처럼 엄청난 죽 노동과 저임금으로 사회에서 개처럼 일만하다 버려 지는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워킹홀리커(?)들을 위해 형성된 경혼정보회사에서 디자이너는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들에게 남은건 씁쓸한 미소 뿐이다.
"명사가 된 디자이너의 뒤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24시간 사회'를 살고 있는 디자인 '잡역부들'—이를테면 컴퓨터 게임의 그래픽을 하청받아 며칠 동안 낮밤을 잊어가고 고스톱 화투패를 그려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사이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디자인 멜랑콜리아 (서동진 지음) 14쪽, 8번째 줄 –
+ 엘리트 디자이너와 힘 없는 디자이너의 구분은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이에 대한 논쟁 또한 환영합니다.
+ 디자이너의 노동 3권 확보에 대한 의견 및 논의 적극 환영합니다.
2009.04.14 15:01:43
디자인관련 학회 10개 만들때, 노동조합 1개 꼴로 만들었어도(논의만 했어도)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OECD 국가중 최다 근로시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반근로자 평균보다 (최소) 30% 더 일하고, 30% 덜 받는 '디자이너'란 직업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환상'만 가지고 있는 현실.
디자이너들 자신도 종종 예술가란 착각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로 애써 제한하려는 당황스러운 결말. 무엇보다 이런 결말을 뒤집기 위해
큰 흐름을 만들어나가야 할, 널리 알려진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분들께서 이런 문제에
대해 담합이라도 한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정부의 개입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대다수의 평범한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준비가 되어있을때 가능한(진정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OECD 국가중 최다 근로시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반근로자 평균보다 (최소) 30% 더 일하고, 30% 덜 받는 '디자이너'란 직업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환상'만 가지고 있는 현실.
디자이너들 자신도 종종 예술가란 착각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로 애써 제한하려는 당황스러운 결말. 무엇보다 이런 결말을 뒤집기 위해
큰 흐름을 만들어나가야 할, 널리 알려진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분들께서 이런 문제에
대해 담합이라도 한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정부의 개입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대다수의 평범한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준비가 되어있을때 가능한(진정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9.04.14 16:07:54
현실은 현실입니다. 엘리트들도 자존심만 있을뿐 의래님이 언급하신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학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처음 사회에 나왔을때 그놈의 고학력땜에 맘고생 많이 했습니다.
첫 월급이 60만원. 그조차 못받고 쫓겨났습니다. 디자인 저변에 깔린 현실입니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친구는 직장을 못구해 거의 1년가까이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물론 운좋은 몇몇은 제외입니다. 사실 운도 노력의 산물이긴 하지만요)
기존 관념이 가장 문제입니다.
우리는 디자이너의 권리를 외치지만 실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압니다. 신나게 문제점을 주장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항상 제자리로 옵니다.
책한줄 읽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디자이너들도 많습니다.
권력.
권력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어떻해야 합니까?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 너무 많군요. ㅠㅠ
이렇게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은 너무 많습니다.
우린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부정.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면 서서히 스스로 변화될수 있습니다.
빅터파파넥은 교육이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행위이며,
스스로 변화한 자는 주변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육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고쳐가는 행위입니다.
너무 뜨문뜨문 말하고 있나요?ㅋ
제 얘기를 종합하면 불만을 얘기할때 포괄적으로 가면 아무것도 바꿀수 없습니다.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씩 준비하고 변화시켜가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저변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디자인읽기가 다시 보이는군요.
(헉! 디자인읽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좀 편파적이라)
고학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처음 사회에 나왔을때 그놈의 고학력땜에 맘고생 많이 했습니다.
첫 월급이 60만원. 그조차 못받고 쫓겨났습니다. 디자인 저변에 깔린 현실입니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친구는 직장을 못구해 거의 1년가까이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물론 운좋은 몇몇은 제외입니다. 사실 운도 노력의 산물이긴 하지만요)
기존 관념이 가장 문제입니다.
우리는 디자이너의 권리를 외치지만 실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압니다. 신나게 문제점을 주장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항상 제자리로 옵니다.
책한줄 읽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디자이너들도 많습니다.
권력.
권력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어떻해야 합니까?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 너무 많군요. ㅠㅠ
이렇게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은 너무 많습니다.
우린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부정.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면 서서히 스스로 변화될수 있습니다.
빅터파파넥은 교육이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행위이며,
스스로 변화한 자는 주변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육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고쳐가는 행위입니다.
너무 뜨문뜨문 말하고 있나요?ㅋ
제 얘기를 종합하면 불만을 얘기할때 포괄적으로 가면 아무것도 바꿀수 없습니다.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씩 준비하고 변화시켜가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저변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디자인읽기가 다시 보이는군요.
(헉! 디자인읽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좀 편파적이라)
2009.04.14 17:13:17
일단 노동3권이 보장되는 직장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게 우선일 듯 싶습니다. 과연 디자이너에게 한정된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전반적인 문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말이죠. 덧붙이자면 그게 과연 한국사회에서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여러 나라 역시 마찬가지인가? 라는 점이 궁금하며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권리이 보장되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디자이너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인지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역시 궁금해지구요.
디자이너의 권리를 위해 해야 할 디자이너가 할 일는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디자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다른 직업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죠.
그렇게 보면 제 생각으로는 단지 디자이너만의 문제라고는 생각이 안들 것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디자인읽기를 열심히 읽는 애독가입니다. 무례하게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아니면 사회적인 전반적인 문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말이죠. 덧붙이자면 그게 과연 한국사회에서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여러 나라 역시 마찬가지인가? 라는 점이 궁금하며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권리이 보장되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디자이너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인지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역시 궁금해지구요.
디자이너의 권리를 위해 해야 할 디자이너가 할 일는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디자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다른 직업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죠.
그렇게 보면 제 생각으로는 단지 디자이너만의 문제라고는 생각이 안들 것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디자인읽기를 열심히 읽는 애독가입니다. 무례하게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2009.05.07 18:09:06
맞습니다. 분명 디자이너에게만 한정된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노동자가 포함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직업이든 위와 같은 상황에 있는 노동자라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나라에 대한 부분은 제가 이야기 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 일 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 의견을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1'님의 의견이 제 글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독자1'님 같은 분들의 의견이 이 주제에 대한 부분을 더욱 발전적으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직업이든 위와 같은 상황에 있는 노동자라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나라에 대한 부분은 제가 이야기 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 일 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 의견을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1'님의 의견이 제 글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독자1'님 같은 분들의 의견이 이 주제에 대한 부분을 더욱 발전적으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04.14 19:08:02
아~
노동의 권리, 디자이너의 권리, 디자이너로서 노동의 권리... 이렇라도 나누어 접근해야겠군요.
너무나 좋은 지적이십니다. 저도 뭔가 혼동되어 사용한듯합니다.
----------------
무례하다뇨... 여기는 이런말이 쓰이는 곳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에게서도 듣기위한 공간입니다. 여기 글쓰는 분들이 되려 감사해야죠.
노동의 권리, 디자이너의 권리, 디자이너로서 노동의 권리... 이렇라도 나누어 접근해야겠군요.
너무나 좋은 지적이십니다. 저도 뭔가 혼동되어 사용한듯합니다.
----------------
무례하다뇨... 여기는 이런말이 쓰이는 곳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에게서도 듣기위한 공간입니다. 여기 글쓰는 분들이 되려 감사해야죠.
2009.04.15 22:51:38
이번엔 제가 김의래님 생각에 반박을 해야겠습니다.
먼저, 말씀해주신 모든 문제, 즉, 부당한 처우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 과연 조합을 통한 투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특정 회사 및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아니면 직업 자체가 공인 자격증을 요하는 경우에 생겨납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철도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현대백화점 노동조합 등등... 김의래 님께서는 디자이너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온전한 권리를 찾자는 좋은 취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정작 조합의 보호를 받아야할 이른바 '디자이너'라는 집단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사실 답이 없습니다.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범위를 정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제일 먼저 걸리는 집단은 디자인이라는 애매한 직업 영역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예로 어도비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혹은 학원에서) 익혀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분들을 디자이너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저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문대 출신 디자이너보다 더한 악조건에서 그래픽을 생산하는 이들이 바로 그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분들이 디자이너 조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은 2만원짜리 책을 사서 한달만 공부하고 명함 하나 파면 디자이너 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들 중에는 정말 열정있고 사명감있는 디자이너도 있겠지만, 그냥 쉽게 프로그램 공부해서 날로 먹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부업으로 포토샵 좀 만지고 용돈 타듯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는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기가 너무 쉽다는데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조합은 선수들에게 평생동안 생계에 지장없을 정도의 연금을 지급한다고 하던데요. 그 연금을 타는 조건이 단 하루라도 메이저리그 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면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디자이너로 인정해야 할까요? 사진을 찍어서 그위에 직접 글자를 넣는 포토그래퍼는? 갤러리에서 '디자인 전시'를 하는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입니까 예술가입니까?
이렇게 애매한 직업 영역에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법적으로 인정된 회사나 단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 조건을 정한다면 이때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걸립니다. 세상에는 실력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정말 많습니다. 더구나 어떤 디자인 사무실은 디자이너 두명이 원룸을 빌려 꾸려나가는 프리랜서형 회사도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분들이 디자이너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만약 기발한 근거를 만들어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포용한다 해도 철저히 프로젝트 단위 계약으로 이뤄지는 거래에 조합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른바 '디자이너'라는 인력 공급이 넘쳐나는 이상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부처님도 중재할 수가 없습니다.
++
조합 형성을 통한 투쟁이라는 방법에 의구심이 드는 또다른 이유는 창의적 직업이 필연적으로 띄는 노동 행위의 불확실성입니다. 말 그대로 입니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가치가 불확실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으로, 혹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성과에 따라 임금이 계산됩니다. 노동조합은 이런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부조리를 파헤치죠. 그런데,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이렇게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창의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주일동안 낮밤을 잊으며 고스톱 화투패를 그리는 디자이너와 단 3시간만에 고스톱보다 재밌는 신종 카드게임을 고안한 디자이너. 어느쪽이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할까요?
제가 회사에서 신참 디자이너로 일할 때, 제 노동시간은 실장님의 그것보다 약간 많았고, 대표님의 노동시간보다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물론, 임금은 그 반대였습니다. 직책에 따라 업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른 예를 들어보죠. 저는 최근에 두개의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두 포스터 모두 일전에 디자인 읽기에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요. 둘다 모두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저 혼자서 며칠동안 냅다 고민만 하다가 실질적인 작업, 즉,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행한 작업은 단 몇시간만에 끝났습니다. 다른 하나는 학생 세명이 일주일간 수십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서 작업을 끝냈습니다. 만약 두 포스터에 노동 임금을 부여한다면 과연 어떤 차등을 둬야 할까요?
디자이너의 노동은 단순히 '노동'이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화가와 비슷합니다. 어찌보면 디자이너의 24시간 삶 자체가 디자인 노동입니다. 만약 노동조합이 불특정 디자이너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나선다면 어떤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디자이너가 날렵하고 솜씨좋게 작업을 끝내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지겠죠. 경험이 많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춘 디자이너가 단지 노동 시간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포토샵을 수십시간동안 만지는 '기능형' 디자이너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디자이너가 근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상황은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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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통한 쟁취는 이렇게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을 바꿀 수는 없죠. 예전에 홍성택 선생님께서 디자이너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납니다. 홍성택 선생님의 노력은 단지 회사를 부강하게 만들어서 많은 임금을 챙겨주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좋은 디자인 결과를 세상에 선보여서 사람들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은 15년동안 꾸준히 조금씩 나타났습니다.
저는 보다 느리고 답답하고 고지식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노동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디자인 활동이 엇비슷하게 일치해야만 디자이너가 각자 능력을 펼치며 일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권익을 보호하려고 나선다면 아무리 그 뜻이 좋고 방법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분야 바깥에 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결국 '밥그릇 찾기'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는 순식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디자이너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또, 기회가 왔을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놈은 아무런 생각도 없군' 이라고 느낄때마다 사회 의식은 한발짝 후퇴하고, '의외로 똑똑한걸'이라고 느낄때마다 한발짝 전진합니다. 디자인 읽기와 같은 공간에서 생각을 나누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강하게 단련하는 동시에 사회가 디자이너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비평이 칼날같이 살아있는 분야만이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도 의식있는 디자이너를 키우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이 서있는 인력들이 사회로 퍼져나가서 디자이너에 대한 옳지 않은 편견을 희석하길 기대합니다.
참 보이지도 않는 갑갑한 얘깁니다. 그렇죠? ^^ 지금 당장 과로사하게 생겼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에 기대어 권익을 쟁취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쪽에 승부를 거는쪽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일거라 믿습니다. 김의래 님께서 디자이너가 겪고 있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생각을 올려주신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게 지금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없을지는 몰라도 널리 퍼져나가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한다면 차차 바뀌는 모습이 나타날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훌륭한 디자인 사무실들이 걸어온 길입니다. 홍성택 선생님 이하 홍디자인 디자이너들은 칠흙같이 어두운 길을 15년동안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15년 이상 이 길을 더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먼저, 말씀해주신 모든 문제, 즉, 부당한 처우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 과연 조합을 통한 투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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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특정 회사 및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아니면 직업 자체가 공인 자격증을 요하는 경우에 생겨납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철도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현대백화점 노동조합 등등... 김의래 님께서는 디자이너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온전한 권리를 찾자는 좋은 취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정작 조합의 보호를 받아야할 이른바 '디자이너'라는 집단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사실 답이 없습니다.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범위를 정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제일 먼저 걸리는 집단은 디자인이라는 애매한 직업 영역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예로 어도비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혹은 학원에서) 익혀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분들을 디자이너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저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문대 출신 디자이너보다 더한 악조건에서 그래픽을 생산하는 이들이 바로 그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분들이 디자이너 조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은 2만원짜리 책을 사서 한달만 공부하고 명함 하나 파면 디자이너 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들 중에는 정말 열정있고 사명감있는 디자이너도 있겠지만, 그냥 쉽게 프로그램 공부해서 날로 먹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부업으로 포토샵 좀 만지고 용돈 타듯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는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기가 너무 쉽다는데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조합은 선수들에게 평생동안 생계에 지장없을 정도의 연금을 지급한다고 하던데요. 그 연금을 타는 조건이 단 하루라도 메이저리그 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면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디자이너로 인정해야 할까요? 사진을 찍어서 그위에 직접 글자를 넣는 포토그래퍼는? 갤러리에서 '디자인 전시'를 하는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입니까 예술가입니까?
이렇게 애매한 직업 영역에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법적으로 인정된 회사나 단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 조건을 정한다면 이때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걸립니다. 세상에는 실력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정말 많습니다. 더구나 어떤 디자인 사무실은 디자이너 두명이 원룸을 빌려 꾸려나가는 프리랜서형 회사도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분들이 디자이너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만약 기발한 근거를 만들어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포용한다 해도 철저히 프로젝트 단위 계약으로 이뤄지는 거래에 조합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른바 '디자이너'라는 인력 공급이 넘쳐나는 이상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부처님도 중재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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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형성을 통한 투쟁이라는 방법에 의구심이 드는 또다른 이유는 창의적 직업이 필연적으로 띄는 노동 행위의 불확실성입니다. 말 그대로 입니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가치가 불확실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으로, 혹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성과에 따라 임금이 계산됩니다. 노동조합은 이런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부조리를 파헤치죠. 그런데,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이렇게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창의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주일동안 낮밤을 잊으며 고스톱 화투패를 그리는 디자이너와 단 3시간만에 고스톱보다 재밌는 신종 카드게임을 고안한 디자이너. 어느쪽이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할까요?
제가 회사에서 신참 디자이너로 일할 때, 제 노동시간은 실장님의 그것보다 약간 많았고, 대표님의 노동시간보다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물론, 임금은 그 반대였습니다. 직책에 따라 업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른 예를 들어보죠. 저는 최근에 두개의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두 포스터 모두 일전에 디자인 읽기에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요. 둘다 모두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저 혼자서 며칠동안 냅다 고민만 하다가 실질적인 작업, 즉,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행한 작업은 단 몇시간만에 끝났습니다. 다른 하나는 학생 세명이 일주일간 수십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서 작업을 끝냈습니다. 만약 두 포스터에 노동 임금을 부여한다면 과연 어떤 차등을 둬야 할까요?
디자이너의 노동은 단순히 '노동'이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화가와 비슷합니다. 어찌보면 디자이너의 24시간 삶 자체가 디자인 노동입니다. 만약 노동조합이 불특정 디자이너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나선다면 어떤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디자이너가 날렵하고 솜씨좋게 작업을 끝내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지겠죠. 경험이 많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춘 디자이너가 단지 노동 시간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포토샵을 수십시간동안 만지는 '기능형' 디자이너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디자이너가 근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상황은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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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통한 쟁취는 이렇게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을 바꿀 수는 없죠. 예전에 홍성택 선생님께서 디자이너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납니다. 홍성택 선생님의 노력은 단지 회사를 부강하게 만들어서 많은 임금을 챙겨주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좋은 디자인 결과를 세상에 선보여서 사람들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은 15년동안 꾸준히 조금씩 나타났습니다.
저는 보다 느리고 답답하고 고지식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노동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디자인 활동이 엇비슷하게 일치해야만 디자이너가 각자 능력을 펼치며 일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권익을 보호하려고 나선다면 아무리 그 뜻이 좋고 방법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분야 바깥에 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결국 '밥그릇 찾기'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는 순식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디자이너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또, 기회가 왔을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놈은 아무런 생각도 없군' 이라고 느낄때마다 사회 의식은 한발짝 후퇴하고, '의외로 똑똑한걸'이라고 느낄때마다 한발짝 전진합니다. 디자인 읽기와 같은 공간에서 생각을 나누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강하게 단련하는 동시에 사회가 디자이너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비평이 칼날같이 살아있는 분야만이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도 의식있는 디자이너를 키우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이 서있는 인력들이 사회로 퍼져나가서 디자이너에 대한 옳지 않은 편견을 희석하길 기대합니다.
참 보이지도 않는 갑갑한 얘깁니다. 그렇죠? ^^ 지금 당장 과로사하게 생겼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에 기대어 권익을 쟁취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쪽에 승부를 거는쪽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일거라 믿습니다. 김의래 님께서 디자이너가 겪고 있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생각을 올려주신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게 지금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없을지는 몰라도 널리 퍼져나가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한다면 차차 바뀌는 모습이 나타날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훌륭한 디자인 사무실들이 걸어온 길입니다. 홍성택 선생님 이하 홍디자인 디자이너들은 칠흙같이 어두운 길을 15년동안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15년 이상 이 길을 더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2009.04.17 15:45:25
이지원님의 의견 감사드립니다.
반론이 늦었습니다.
우선 디자이너의 경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금을 받고 일정이상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면, 그게 누구든 제 글의 대상이 됩니다. 컴퓨터 학원에서 3개월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건, 2만원짜리 책을 사서 한달만에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건간에 저임금으로 몇일씩 밤을 새워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디자이너의 구분없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임금에 대한 말씀도 반박을 해야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임금에 대한 수준은 "도와주세요"가 아닌 "살려주세요"라는 것 입니다. 이제는 그 임금의 수준이 정말 절박한 실정입니다. 누가 더 많이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이미 힘없는 디자이너들이 받는 급여 수준은 서울에서 생활하기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시선에서는 디자이너의 경계에 있지 않더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생존의 문제까지 도달한 임금 수준이 해결되지 않는한 "어느 디자인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하는 고민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랜시간을 들였지만 질이 낮은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 짧은 시간을 들였지만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힘없는 디자이너의 노동시간은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는 매일 18시간 이상씩 일을해야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당신은 좋은 디자인을 위해 그렇게 일을 하십니까?"물어 본다면 분명 "아니요"라는 대답만 돌아올 것입니다. 이미 이들의 시간대비 업무량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생리적 현상까지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투쟁을 통한 쟁취가 그리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디자이너'들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직 여유가 있는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노동조합을 통한 투쟁이든,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든 상관없이 '시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빨리 해결 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좋습니다. 이 많은 힘없는 디자이너들이 1~2년이라도 더 버텨준다면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결국 제가 '투쟁'이라는 선택을 한것은 우리들에게 그만큼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시간'은 이제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기 힘들어진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아마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여유 자금이 넉넉하여 유학(혹은 기타등등)이라는 선택 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달 학자금 대출금과 생활비를 걱정하며 오랜 죽노동으로 겨우겨우 마이너스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2009.04.17 17:42:14
두분의 의견모두 공감합니다.
저도 충무로 근처에서 3주 동안 집에 한번도 못간 적도 있고, 런닝 머신 위에서 밤을 샌적이 한두 번이 압니다. 결국 그 회사에서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듯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광고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의 임금은 인턴에게 80만원을 줬지만 결국 인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약 3달 이상을 쳐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졸업당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약간은 거만까지 했었습니다.
보기 좋게 한방 먹었죠. 망할 놈의 현실에게...
시간이 지나 결국은 저를 품어준 회사에서 어렵지만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쓰라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면 두 분의 이야기를 풀어줄 방법은 단지 '권력' 밖에 없습니다.
똑똑하다고 권력을 주어지지 않고, 돈이 많다고 권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미친듯이 많으면 몰라도...)
공동의 권익을 찾고, 일종의 권력을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당장 양대 노동조합의 현실을 보십시오. 한국노총은 이미 정권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후 꼬리를 감추었고, 그 높은 목소리를 내며 당당했던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으로 원내에 진출했지만, 결국 지리멸렬의 위기입니다. 걸출한 의원이라고 생각했던, 존경했던 심상정 의원의 최근 모습은 도무지 오리무중입니다.(어딘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겠죠)
이 두 노동조합은 어느 특정 노동조합이 아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직종이 포함된 거대 노동조합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정규직 문제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고, 자신들의 상황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거대해진 하나의 조직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노동자를 보호하자고 만든 조직내에서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부정채용, 성추행... 최근 불거졌던 문제만 봐도 그 현실은 감히 짐작됩니다. 노동조합이 결성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정규직이 태반이 디자이너의 노동조합이 결성될리도 만무합니다. 이지원선생의 디자인 직종의 특수성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디자이너들의 노동조합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저처럼 각 회사가 가입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길밖에 없지요.
김의래님의 통곡은 ‘디자인읽기’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제 앞에서 한 친구가 디자인을 하고 있고,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졸업한 다른 친구는 회사에서 신문을 나르고 커피를 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둘은 동갑이고, 전공도 비슷합니다. (제 느낌에는 알바 학생이 더 능력이 뛰어나 보입니다.)
현실입니다.
사실 여기에 오시는 디자이너분들은 그래도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회경험도 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여유도 약간 있어 보입니다. 여기에서조차 하소연 할 수 없는 나약하고 현실에 메마른 디자이너들이 대부분이죠. 디자인 학원을 나왔던, 대학을 나왔던, 그냥 그림을 잘 그려서, 취미로... 등등 저도 의래님 처럼 모두 디자이너로 봅니다. 그런 디자이너들의 현실.
참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또 해줄 것도 없습니다.
권력.
다시 권력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권력' 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권력은 총, 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사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주먹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권력은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의 '의식'입니다. (지난번에 이지원 선생님의 도발로 ‘정치적 의식’에 대해 의견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식'은 곧 '권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식을 가지기 위해 책도 읽고, 현실을 통탄하고, 사안마다 부딪치면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의 ‘자본적 힘’이 아닌 ‘사회적 힘’을 강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위정자들에게 디자인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그것을 하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등등, 디자이너의 의식을, 디자인의 힘을 알려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그 권력을 위임받아야 합니다. 분명 이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고 힘겨운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저도 의래님처럼 뒤집어엎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디자인이 판단되고 디자인이 결정되는 이 현실에 구역질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부딪쳐도 결국 저는 병아리에 불과했기에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는 내용들.
전문적이기도 하고 현실에 대한 개탄도 있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물론 모두 디자인을 둘러싼 내용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이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둘러싼 강구룡님과의 논쟁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가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논쟁하고 공감하면서 의식을 쌓아가고, 논리를 쌓아가고, 현실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사회에서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소통이 생기고, 논쟁과 공감에서 주변과 신뢰가 싹 뜨고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 혹은 사회인으로서 사회적 위치가 고양되어 가야 합니다.
최근 많은 정치적 성향을 띈 교수님들이 정부에 지자체에 많이 진출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의 성향이 어떻든간에 이런 일들은 많은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 디자인교육에 대한 논쟁이 있었죠. 교사의 직분들 망각하고 현실에 교수라는 직분을 이용해 갖가지 권력을 위임받은 선생님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교사로서의 직분을 망각한 행동들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쪽에서 이런 노력을 하고 계신다면 그걸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행여 정당한 생각을 가지지 못한 분들이 디자인계에 되려 폐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되기는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다고 정당한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의도가 다르더라도 디자이너에게 정치적, 사회적 권력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우리가 배고프고 가슴 아픈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가 여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발전을 했습니까? 대한민국에 디자인 개념이 생긴지 채 20년도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사람들 참으로 신기하게 주변을 잘도 따라갑니다.
저는 디자인읽기에서 일종의 희망을 확인합니다.
각자 디자인읽기에 들어오는 이유는 다르지만, 고민하고, 정리하고, 도발하고, 비판하는 현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이런 대화가 당장 현실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내일을 위한 ‘씨앗’이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또 흥분했습니다. 흑흑. 이해해 주십시오.
저도 충무로 근처에서 3주 동안 집에 한번도 못간 적도 있고, 런닝 머신 위에서 밤을 샌적이 한두 번이 압니다. 결국 그 회사에서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듯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광고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의 임금은 인턴에게 80만원을 줬지만 결국 인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약 3달 이상을 쳐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졸업당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약간은 거만까지 했었습니다.
보기 좋게 한방 먹었죠. 망할 놈의 현실에게...
시간이 지나 결국은 저를 품어준 회사에서 어렵지만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쓰라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면 두 분의 이야기를 풀어줄 방법은 단지 '권력' 밖에 없습니다.
똑똑하다고 권력을 주어지지 않고, 돈이 많다고 권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미친듯이 많으면 몰라도...)
공동의 권익을 찾고, 일종의 권력을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당장 양대 노동조합의 현실을 보십시오. 한국노총은 이미 정권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후 꼬리를 감추었고, 그 높은 목소리를 내며 당당했던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으로 원내에 진출했지만, 결국 지리멸렬의 위기입니다. 걸출한 의원이라고 생각했던, 존경했던 심상정 의원의 최근 모습은 도무지 오리무중입니다.(어딘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겠죠)
이 두 노동조합은 어느 특정 노동조합이 아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직종이 포함된 거대 노동조합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정규직 문제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고, 자신들의 상황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거대해진 하나의 조직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노동자를 보호하자고 만든 조직내에서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부정채용, 성추행... 최근 불거졌던 문제만 봐도 그 현실은 감히 짐작됩니다. 노동조합이 결성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정규직이 태반이 디자이너의 노동조합이 결성될리도 만무합니다. 이지원선생의 디자인 직종의 특수성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디자이너들의 노동조합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저처럼 각 회사가 가입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길밖에 없지요.
김의래님의 통곡은 ‘디자인읽기’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제 앞에서 한 친구가 디자인을 하고 있고,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졸업한 다른 친구는 회사에서 신문을 나르고 커피를 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둘은 동갑이고, 전공도 비슷합니다. (제 느낌에는 알바 학생이 더 능력이 뛰어나 보입니다.)
현실입니다.
사실 여기에 오시는 디자이너분들은 그래도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회경험도 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여유도 약간 있어 보입니다. 여기에서조차 하소연 할 수 없는 나약하고 현실에 메마른 디자이너들이 대부분이죠. 디자인 학원을 나왔던, 대학을 나왔던, 그냥 그림을 잘 그려서, 취미로... 등등 저도 의래님 처럼 모두 디자이너로 봅니다. 그런 디자이너들의 현실.
참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또 해줄 것도 없습니다.
권력.
다시 권력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권력' 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권력은 총, 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사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주먹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권력은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의 '의식'입니다. (지난번에 이지원 선생님의 도발로 ‘정치적 의식’에 대해 의견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식'은 곧 '권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식을 가지기 위해 책도 읽고, 현실을 통탄하고, 사안마다 부딪치면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의 ‘자본적 힘’이 아닌 ‘사회적 힘’을 강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위정자들에게 디자인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그것을 하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등등, 디자이너의 의식을, 디자인의 힘을 알려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그 권력을 위임받아야 합니다. 분명 이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고 힘겨운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저도 의래님처럼 뒤집어엎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디자인이 판단되고 디자인이 결정되는 이 현실에 구역질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부딪쳐도 결국 저는 병아리에 불과했기에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는 내용들.
전문적이기도 하고 현실에 대한 개탄도 있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물론 모두 디자인을 둘러싼 내용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이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둘러싼 강구룡님과의 논쟁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가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논쟁하고 공감하면서 의식을 쌓아가고, 논리를 쌓아가고, 현실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사회에서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소통이 생기고, 논쟁과 공감에서 주변과 신뢰가 싹 뜨고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 혹은 사회인으로서 사회적 위치가 고양되어 가야 합니다.
최근 많은 정치적 성향을 띈 교수님들이 정부에 지자체에 많이 진출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의 성향이 어떻든간에 이런 일들은 많은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 디자인교육에 대한 논쟁이 있었죠. 교사의 직분들 망각하고 현실에 교수라는 직분을 이용해 갖가지 권력을 위임받은 선생님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교사로서의 직분을 망각한 행동들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쪽에서 이런 노력을 하고 계신다면 그걸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행여 정당한 생각을 가지지 못한 분들이 디자인계에 되려 폐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되기는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다고 정당한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의도가 다르더라도 디자이너에게 정치적, 사회적 권력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우리가 배고프고 가슴 아픈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가 여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발전을 했습니까? 대한민국에 디자인 개념이 생긴지 채 20년도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사람들 참으로 신기하게 주변을 잘도 따라갑니다.
저는 디자인읽기에서 일종의 희망을 확인합니다.
각자 디자인읽기에 들어오는 이유는 다르지만, 고민하고, 정리하고, 도발하고, 비판하는 현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이런 대화가 당장 현실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내일을 위한 ‘씨앗’이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또 흥분했습니다. 흑흑. 이해해 주십시오.
2009.04.18 21:48:32
김의래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있다면 (생긴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담당해야 할까요?
이건 수사적 질문이 아니라, 그냥 제가 잘 몰라서 여쭤보는 겁니다.
모든 노동자를 아우르는 한국의 노동조합이 담당할 수 없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단체가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될텐데요. 그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윤여경 선생님.
러닝머신 위에서 밤을 새는 건 어떤 상황입니까? 상상이 안가는군요.
2009.04.28 13:58:39
답문이 늦었습니다.
디자이너의 노동조합은 다른 노동조합이 해야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입니다.
(노동조합이 해야 하는 일은 지금하고 있는 일과는 다릅니다.)
공통적인 역활을 제외하고 디자이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면,
첫 번째로 조합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디자이너를 구분 및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그 구분과 정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돈을 받고 '미'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디자이너들의 권리(혹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체계화하여 디자이너들에게 알리는 일 입니다.
야근 수당, 식사, 임금 등등 무수이 많은 부분에서 그 권리를 체계화하고 의무화해야 하는 일 입니다.
세 번째로 소규모로 나누어져 있는 디자이너들 사이의 네트워크 역활 입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힘 없는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임금은 적당한지" 혹은 "일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은지..."등등 지금은 단지 주변 디자이너들간에
공유되던 정보들을 공개하고 나누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네 번째로 디자인 작업물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각 작업물에 대한 최소 노동 비용을 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브로슈어는 어느정도 크기는 1p당 얼마", "추가 시안은 얼마" 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명문화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이것 또한 하나하나 쌓아나가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 역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노동조합의 필요성은 거부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04.28 19:06:39
미국에 프리랜서 연합이 있습니다. www.freelancersunion.org 그리고 실제적으로 금액의 기준이나 이런 것은... 이미 기준단가가 충무로 기준으로 존재하고 있고 암묵적인 묵계는 있습니다만 디자인 노동자들에게 요구되기 힘든 조건입니다. 왜냐면 위에서도 장황한 설명들이 있지만 디자인 노동자의 요건이 매우 넓기때문이죠. 일러스트 툴만 독학해서 외곽선따기 작업하는 사람들은 일단 시장진입이 우선인데 그런 요건이 애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000년대 초반에 웹시장 단가가 엄청나게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 주된 이유중에 하나가 대학생들의 벤처난립이죠. 사이트당 몇천이 기본이던 단가가 학생들이 벤처를 시작하면서 몇백으로 떨어집니다. 그들을 말릴 아무런 방법이 없었죠. 디자인 노동자의 연합은 실제적으로 그 영역을 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미를 추구하는 노동자' ... 는 좀... 현실적으로 최저노동임금제가 법률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활동내에서 프리랜서 권익보호가 주된 목표로 되어야 할겁니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가장 큰 문제이기때문에 저 프리랜서연합은 그 실리추구가 목적입니다. 의료보험을 집단적 개념에서 딜해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익을 돌려주는 행위가 가장 우선적이죠. 한국은 의료보험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잘되어있기때문에 다른 베네핏이 없나 보는게 첫걸음일겁니다. 그리고 정글에서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정글에는 그런 최소한의 권익이 지켜지지 않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거기서 고충을 토로합니다. 거기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던져보고 같이 할 사람들을 찾아보는게 훨씬 나을겁니다.
2009.05.01 17:43:39
갑자기 너무 푸쉬해 주시는 것 아닌지.
저도 디자인 노동조합에 대한 부분을 한번 진행해 보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꼭 힘을 가진 단체 뿐만이나라
기본적으로 최소 단가에 대한 명문화 같은 일 또한 중요한 일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아직 해야하는 일들과 겹친다는 것이
지금 당장 뛰어들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정글에 올리려고 보니 이런 논의를 하는 게시판이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글을 잘 안들어 갑니다)
혹 이런 논의를 위한 게시판이 따로 있는 건가요?
알려주시면 그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없다면 일반 게시판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 읽기에 게시판을 따로 개설하는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제가 관리자가 아닌터라 이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게시판이 개설된다면 좋든 실든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과 고민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절대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가 추진하게 되더라도 이런 논의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05.02 04:33:05
가능하면 넓게, 크게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디자인이란 용어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파인아트하던 사람들이 일러스트일이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무용이나 영화, 사운드 다양한 방면에서 관련되는 사람들이 있기에 디자인 노동조합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보입니다. 노동조합이란 말도 조금 어페가 있다고 보구요. 프리랜서 연합이라는 형태로 한번 고민해보시면 좋을듯합니다. 최저단가라는 개념도 무리가 있습니다. 디자이너들만 그렇게 생각하지 실제로 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인력단가입니다. 그래서 각 기술직의 급수에 따라 소요시간당 견적을 매기는게 통례고 그것을 굳이 안따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아마 기준이 될겁니다. 즉, 최저임금개념이죠. 그래서 디자인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나가는 견적들은 (중소기업이상, 관공서) 노동부의 공지금액에 맞춰서 프로젝트당 소요인력과 기간으로 잡습니다. 이런 노동조합성격의 모임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것, 특히 지금 시점이라면 기존의 법을 잘 따르도록 시장을 설득하는게 우선일 겁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할 것은 프리랜서 고용계약을 문서화해서 거래하도록 홍보하는 것일 겁니다. 디자이너나 이런 프리랜서들이 솔직히 이런 부분에 적극적이지 않고 어떤면에서는 잘 안뭉치기에 그런 노동조합운동의 미래는 밝아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또한 디자인진흥원같은 곳에서는 이미 그러한 디자인 단가 및 노동문제를 상담해주는 창구도 있습니다. 의지가 있으시면 그런 곳을 만나보시고 도울 일이 없는가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디자인 정글은 조금더 꼼꼼하게 흝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 수다방, 뒷따마 열전같은 곳에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동참을 유도하시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식으로 접근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두번 애기하셔서 될 사항은 아니고 꾸준히 자꾸 언급하셔야할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마음맞는 분들 만나시면 또 미팅도 가지시고 실질적으로 가능한걸 찾아보시면 좋겠죠. 님이 의지가 있으시다면 이런 것들은 꾸준히 차근 차근 해나가시면 될 노릇들이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는게 중요합니다. 같은 처지에 있거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요. 그리고 논의도 좋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수많은 말밖에 안됩니다. 어떤 움직임을 꾸려나가실지 기대해보겠습니다.
2009.04.16 01:36:54
그래픽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노력.
그 노력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의 생각, 법전의 법률.
이 두가지가 완성될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섣불리 이 두가지를 쉽게 쟁취하고 싶어합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시간의 축적과 그에 따른 디자인 결과물이 앞으로 더 필요합니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눈높이는 선진국 디자인에 맞춰져 있지만
사회적인식은 아직도 초등학교 수준을 벋어나지 못하는 이 현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디자인 읽기의 글처럼 비평도 앞으로 더 필요할 것이고
이런것들을 근거로 많은 책이 출간되야 하며 많은 디자인 전시와 디자인 상품을 통해
디자인의 소중함과 가치를 더 알려야 하며 디자인이 사회적인 이슈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그외 기타 등등 디자인 관련 국가적인 정책, 행정 등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이 조금 서투르게 이런것들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습니다.
인내와 기다림으로 더 좋은 세상을 기약합니다.
그 노력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의 생각, 법전의 법률.
이 두가지가 완성될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섣불리 이 두가지를 쉽게 쟁취하고 싶어합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시간의 축적과 그에 따른 디자인 결과물이 앞으로 더 필요합니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눈높이는 선진국 디자인에 맞춰져 있지만
사회적인식은 아직도 초등학교 수준을 벋어나지 못하는 이 현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디자인 읽기의 글처럼 비평도 앞으로 더 필요할 것이고
이런것들을 근거로 많은 책이 출간되야 하며 많은 디자인 전시와 디자인 상품을 통해
디자인의 소중함과 가치를 더 알려야 하며 디자인이 사회적인 이슈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그외 기타 등등 디자인 관련 국가적인 정책, 행정 등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이 조금 서투르게 이런것들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습니다.
인내와 기다림으로 더 좋은 세상을 기약합니다.
2009.05.28 21:35:13
글 잘 읽었습니다. 디자인쪽에서도 노동조합이 왜 없을까 늘 고민했는데, 이런 목소리가 있다니 반갑네요. 우선 님들께서 말씀하신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범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화두에 올랐네요. 김의래씨가 돈을 받고 미를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명쾌하게 말씀해주셨지만, '산별노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봄직하지 않을까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굉장히 다양하고(참고로 저는 패션쪽입니다.) 영세한 곳이 많기 때문에 착취의 재생산이 쉽고, 은폐되기도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의 큰 틀을 아우르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거겠죠^^ 소외받는 이들이 없도록 말이죠.
그리고 권력의 지향이라는 말에는 조금 다른 의견입니다. 권력을 지향하는 것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의 상향 조정? 정도라고 보았는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빨간띠 두르고 무시한 그림이 펼쳐지는데요, 그래서 대중의 인식도 높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다른 방식이라고 해도 투쟁, 즉 자본가들과의 싸움은 계속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떻게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사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특정 직업(교수.등등)의 의식이 있는 즉 인텔리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텔리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한계도 있구요. 과거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스탈린과 인텔리의 집권으로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에 시달렸나요. 물론 제가 말한건 최악의 상황?의 시나리오이구요. 여튼 반드시 노조는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패션쪽도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랜드, 제일모직, 엘지패션 등의 대기업이 특히 이랜드가 중소기업을 모두 삼키면서 더더욱 디자이너들의 양극화와 노동조건은 열악해졌고, 기성복이 아닌 부띡(앙드레김같은...) 곳이나 웨딩하는 친구들은 더 말도 못합니다. 30만원받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성추행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리고 패션이라는 산업이 서울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지방 친구들이나 뭣모르는 각 대학 졸업한 친구들이 로테이션 되는 꼴입니다. 도제식 구조의 한계인 셈입니다. 니들 불만이면 나가라. 니들말고 다닐 애들 많다 등등이요.
여튼 앞으로 종종 들러서 글 남길께요. 증말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권력의 지향이라는 말에는 조금 다른 의견입니다. 권력을 지향하는 것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의 상향 조정? 정도라고 보았는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빨간띠 두르고 무시한 그림이 펼쳐지는데요, 그래서 대중의 인식도 높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다른 방식이라고 해도 투쟁, 즉 자본가들과의 싸움은 계속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떻게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사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특정 직업(교수.등등)의 의식이 있는 즉 인텔리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텔리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한계도 있구요. 과거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스탈린과 인텔리의 집권으로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에 시달렸나요. 물론 제가 말한건 최악의 상황?의 시나리오이구요. 여튼 반드시 노조는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패션쪽도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랜드, 제일모직, 엘지패션 등의 대기업이 특히 이랜드가 중소기업을 모두 삼키면서 더더욱 디자이너들의 양극화와 노동조건은 열악해졌고, 기성복이 아닌 부띡(앙드레김같은...) 곳이나 웨딩하는 친구들은 더 말도 못합니다. 30만원받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성추행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리고 패션이라는 산업이 서울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지방 친구들이나 뭣모르는 각 대학 졸업한 친구들이 로테이션 되는 꼴입니다. 도제식 구조의 한계인 셈입니다. 니들 불만이면 나가라. 니들말고 다닐 애들 많다 등등이요.
여튼 앞으로 종종 들러서 글 남길께요. 증말 화이팅입니다.!!!!!!!!!!!
2009.10.15 17:13:21
올려주신 내용들이 너무 주옥같아..
읽으며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디자이너 라는 말과 디자이너 인권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
즉 노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자꾸 데자뷰 처럼 귀에 맴돌더군요.
이에 대한 질문이 제가 학생이었던 2002년에 한번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공간에 계셨던 분은 권혁수 교수님과 AGI 대표이신 김영철 교수님과 장문정 선배였습니다.
디자이너 인권이 바닥이라는 이야기에 왜 없냐는 질문이 시작이었으며.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전의 학생이었던 저는 귀를 쫑끗세우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긴대화와 토론이 오갔으나 지금 생각나는 하나의 문장은
"한국 디자인 사회는 사이클이 너무 빠르다. 피착취구조가 착취구조로 성장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였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면
한국의 디자이너는 회사에 들어간 순간부터 착취를 당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윗분들의 말처럼 능력은 상관없이 회사의 하부구조에 해당할 수록 노동량은 많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적습니다.
처음엔 그것에 대한 별다른 저항이 없다가
1-2년이 지나면 스스로 부당함을 알면서도 거기에 대항하지 않고 현실비판만 하게 됩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때 혼자 튀어봐야 좋을것 없다 생각하고
그리 말해봐야 벗어날수 있는 현실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웃기는 사실은 그러한 현실비판속에 착취자를 욕하지만
어느순간 몇년이 지나지 않아 그 부당함의 기억을 잊고
그역시 회사를 차리거나 계속 다니는 회사의 상부구조에 편입되어
착취하는 인물로 성장해 있다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웃기는 상황인거죠.
저역시 회사를 다니며 착취에 대한 또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고..
회사 재무구조의 불투명함과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쉴때 24시간 편의점 역할하며
미친듯이 작업에 매진했던 20대 마지막시절과 30대 초반의 청년 황금기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반기를 들었습니다.
결과는 절이 싫으면 중이떠나라 였습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군요.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지금같은 악질스럽고 저질스러운 디자이너의 인권을 해결할 방법은
디자인 노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디자인회사 사장님이 될 현재의 디자이너들에게 '순결서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수십년간 이어졌던 피해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준비되어야 할것이고 어느순간 피착취자에에서 착취자가 되는 디자이너들에게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물려주지 않게 마음먹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거지같은 현실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막연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좋습니다.
사회를 바꾸려 하는 개인과 개인의 모임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바뀌어야 겠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80년대 젊은 영혼을 찬란히 빛내며 투쟁했던 투사들이
어느순간 정치인이 되어 자기몫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나는 그러지 않을꺼야란 쉬운 한마디가 현실에 부딪혔을때
얼마나 큰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지...
반성해 봐야합니다.
'의식이 곧 권력이다'라는 윤여경님 말씀.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 의식은 잘못된 권력을 잉태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이 모두 깨끗하진 않습니다.
노동조합내에서도 권력구조는 충분히 존재하고
잘못된 인식의 한풀이식 조합은 또 다른 착취를 생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노동조합이 선행되기전
디자이너 개개인이 올바르고 순결해질수 있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읽으며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디자이너 라는 말과 디자이너 인권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
즉 노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자꾸 데자뷰 처럼 귀에 맴돌더군요.
이에 대한 질문이 제가 학생이었던 2002년에 한번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공간에 계셨던 분은 권혁수 교수님과 AGI 대표이신 김영철 교수님과 장문정 선배였습니다.
디자이너 인권이 바닥이라는 이야기에 왜 없냐는 질문이 시작이었으며.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전의 학생이었던 저는 귀를 쫑끗세우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긴대화와 토론이 오갔으나 지금 생각나는 하나의 문장은
"한국 디자인 사회는 사이클이 너무 빠르다. 피착취구조가 착취구조로 성장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였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면
한국의 디자이너는 회사에 들어간 순간부터 착취를 당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윗분들의 말처럼 능력은 상관없이 회사의 하부구조에 해당할 수록 노동량은 많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적습니다.
처음엔 그것에 대한 별다른 저항이 없다가
1-2년이 지나면 스스로 부당함을 알면서도 거기에 대항하지 않고 현실비판만 하게 됩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때 혼자 튀어봐야 좋을것 없다 생각하고
그리 말해봐야 벗어날수 있는 현실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웃기는 사실은 그러한 현실비판속에 착취자를 욕하지만
어느순간 몇년이 지나지 않아 그 부당함의 기억을 잊고
그역시 회사를 차리거나 계속 다니는 회사의 상부구조에 편입되어
착취하는 인물로 성장해 있다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웃기는 상황인거죠.
저역시 회사를 다니며 착취에 대한 또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고..
회사 재무구조의 불투명함과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쉴때 24시간 편의점 역할하며
미친듯이 작업에 매진했던 20대 마지막시절과 30대 초반의 청년 황금기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반기를 들었습니다.
결과는 절이 싫으면 중이떠나라 였습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군요.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지금같은 악질스럽고 저질스러운 디자이너의 인권을 해결할 방법은
디자인 노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디자인회사 사장님이 될 현재의 디자이너들에게 '순결서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수십년간 이어졌던 피해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준비되어야 할것이고 어느순간 피착취자에에서 착취자가 되는 디자이너들에게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물려주지 않게 마음먹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거지같은 현실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막연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좋습니다.
사회를 바꾸려 하는 개인과 개인의 모임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바뀌어야 겠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80년대 젊은 영혼을 찬란히 빛내며 투쟁했던 투사들이
어느순간 정치인이 되어 자기몫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나는 그러지 않을꺼야란 쉬운 한마디가 현실에 부딪혔을때
얼마나 큰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지...
반성해 봐야합니다.
'의식이 곧 권력이다'라는 윤여경님 말씀.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 의식은 잘못된 권력을 잉태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이 모두 깨끗하진 않습니다.
노동조합내에서도 권력구조는 충분히 존재하고
잘못된 인식의 한풀이식 조합은 또 다른 착취를 생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노동조합이 선행되기전
디자이너 개개인이 올바르고 순결해질수 있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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